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군 병영식 (문단 편집) == 문제점 == || [youtube(VmRbeS6HrTY)] || ||<#ffffff> '''1980년대''' [[미군]] 병영식사 || || [youtube(8HCAi0dH99k)] || ||<#ffffff> '''2021년''' [[대한민국 국군]] 병영식사[* 격리 상황에서의 병영식사였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한국군 병영식이 위의 '''1980년대''' 미군의 병영식보다 훨씬 못하다는 점은 다수가 인정한다. 영상 댓글 참조.] ||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한국군 장병이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잘 보기 힘들고, 그 식단의 열악함과 형편없는 맛으로 악명이 높다. 대부분은 반 세기 째 잘 쓰고 있는 레퍼토리 "전시 [[징병제]]라서 어쩔 수 없다." 정도로 넘어가거나, 아직도 [[쌍팔년도]] 시절의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며 "[[임오군란|군대에 가면 원래 배고픈 법이다.]]"식의 [[후진국]]적 사고를 견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조한 국민의 관심 때문에 제도의 개선도 굉장히 느리다. 현역병들이 먹는 식사만 그런 게 아니라, [[예비군]]이 먹는 식사도 마찬가지다. [[병영식]]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짬밥이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 맛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국군 병영식은 그런 사실을 어느정도 감안해도 경제수준에 비해 심각하게 부실한 수준의 병영식을 주고 있다. [youtube(O_wnLe-OQno,start=183)] 3분 3초부터 주목. --미각을 잃은 남자-- 소초장 중위가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저희 소초 밥]]은 [[개소리 집어쳐|호텔식보다 훨씬 더 맛있습니다]]"라고 할 때 주변 해병들은 --호텔을 한 번도 안 가본 게 분명한-- 소초장이 방금 전 걸그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 때보다 더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은편에 앉은 해병이 막 입에 넣던 국을 뿜으며 고개를 숙이거나, 순식간에 집중되는 주위 해병들의 시선은 덤이고, 옆의 해병이 --이색기가 나랑 같은 밥을 처먹은게 맞나 싶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식판과 소초장의 식판을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이 압권. '''이건 [[대한민국 해병대]]가 공식적으로 만든 영상'''인데도 반어법과 각종 리액션으로 셀프 풍자할 정도다. 단, 한국군 병영식의 현실과는 별개로, 이 연출은 그간의 딱딱한 해병대의 홍보 영상과 달리 재밌고 솔직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한민국에는 1980~1990년대에도 일명 [[헝그리 정신]]이라고 해서 물질적인 빈곤함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한다는 식의 구 [[일본군]]식 마인드가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침투해 있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육상 금메달 3관으로 유명했던 [[임춘애]] 선수의 경우, 실제로는 체력 증강을 위해 도가니탕과 뱀탕 등 몸에 좋다는 건 다 챙겨 먹었으나, 임춘애 선수를 영웅화시카고 후원금을 더 지원받게 해줄려는 기자로 인해 가난으로 라면만 먹으며 우유 한잔 마음대로 못 먹고 승리한 인간 승리 스토리로 알려지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다만 이건 기자가 어린 임춘애 선수에게 더 지원을 받게 해줄려는 선의였다.] 이렇게 된 원인은 실제 어느 정도는 2차대전 때 일본군에게 있는데, 일제 강점기 후반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으로 국력이 점점 쇠퇴하고 사회 분위기도 병영국가화 되면서 군과 민간 양쪽에 정신이 물질을 극복한다며 고난을 강요했던 것을 일본이 물러난 뒤 독립한 한국도 한 동안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였던데다가 오랜기간 동안 군사독재정권기였다는 점과 분단국가라는 점이 겹쳐서 돈으로 모자라는 부분을 정신력으로 때우려는 마인드가 팽배했고, 이것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군만의 문제로 보기에는 일본 초등학교 교사들조차도 칼을 차고 다니고, 학급을 군대식으로 유지할 정도로 사회 전반이 병영사회화 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건군기에 일본군에서 복무한 이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군이 재편되었는데, 당시 그러한 열악함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고, 그래서 '''군대는 당연히 배고프고 식사도 맛없는 곳''' 이라는 잘못된 상식을 갖게 하였다.--그런데 요즘은 그게 맞는 상식이라는 게 함정-- 물론 광복군 출신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배고프고 힘들었던 건 비슷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런 고통을 참고 견뎠을 뿐. 골 때리는 사실 한 가지로, 일본군도 보급 규정대로 정량 배식을 하기만 하면 현대 기준으로도 굉장히 잘 먹는 편이다. 병사들 잘 먹여야 훈련도 잘 받고 잘 싸운단 건 일본군에서도 상식이었고, 일본 근대화 중에 일본군도 서양 군대를 따라하며 육류를 식단에 가능한 다양하게 많이 넣었다. 흔히 알려진 경양식인 돈까스,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함박스테이크 등도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서양식, 특히 오늘날 카레는 영국 해군의 메뉴를 일본 해군이 현지화한 버전이 알려진 것이다. 일명 규깡통 같은 소고기 캔도 수량은 적어도 인기 보급품이었고, 특히 건빵, 별사탕, 사이다, 어묵 등 간식거리 보급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당시 일본 빈민들이 암만 부조리가 많이 많다해도 일자리도 제때 못구해서 굶주리는것보다 삼시세끼라도 챙겨먹는게 나으니 먹고살기 위해서 군입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것이었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나중엔 징집병들에게 군복도 지급하지 못할 상황까지 가니 엉망진창이 되어 [[야마토급 전함]] 등 최정예 병기의 승조원들만 정량대로 배급받을 수 있었고, 특히 해외 전선에서는 보급망이 완전히 끊어져 급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약탈에 의존해야 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